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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공 (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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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왕공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광록대부를 거쳐 유흠, 방봉과 함께 시중을 지냈다. 그는 유흠과 함께 경서를 교열했으며, 애제가 좌씨춘추를 중시하려 할 때 이를 지지했다. 이후 홍농태수를 역임했으나, 원시 3년 여관 사건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 생애

왕공은 처음 외조(外朝)에 속했다가 광록대부로 승진하였고, 이후 유흠, 방봉과 함께 시중(侍中)을 지내며 유흠과 함께 경서 교열을 담당하였다. 애제 때 유흠이 《좌씨춘추》를 중용하려 하자, 왕공은 방봉과 함께 이에 동조하였으나 대사공 사단 등의 반발로 홍농태수로 좌천되었다.[1] 원시 3년(3년), 여관평제의 외척 위씨(衛氏)를 장안으로 불러들이려던 사건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 1. 관직 임명

외조에 속하였다가 광록대부가 되었고, 유흠·방봉과 함께 시중(侍中)이 되었다. 또 유흠과 함께 경서의 교열을 관장하였다.

애제는 유흠의 상주를 받아들여 《좌씨춘추》를 근간으로 삼으려 하였는데, 유생들은 모두 반대하였다. 유흠은 다시 승상 공광에게 이야기하였으나 공광도 마찬가지였고, 오직 왕공과 방봉만 동조하였다. 대사공 사단은 유흠이 선대에 세운 규범을 해치려 하였다고 비방하였고,[1] 결국 애제는 유흠 등을 외직으로 쫓아냈다. 이때 왕공은 홍농태수가 되었다.

원시 3년(3년), 여관평제의 외가 위씨(衛氏)를 장안에 들이려다가 발각되었다. 왕공 또한 여기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 2. 좌씨춘추 지지

애제유흠의 상주를 받아들여 《좌씨춘추》를 학문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으려 했으나, 대부분의 유생들은 이에 반대하였다. 유흠이 승상 공광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공광 역시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왕공은 방봉과 함께 유일하게 유흠의 주장에 동조하며 지지 의사를 보였다.

그러나 대사공 사단은 유흠이 선대가 세운 학문적 규범을 해치려 한다고 비판하였다.[1] 결국 애제는 이러한 반대 여론에 따라 유흠을 비롯한 관련자들을 외직으로 쫓아냈고, 이때 왕공 또한 홍농태수로 임명되어 중앙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2. 3. 여관 사건 연루와 죽음

원시 3년(3년), 여관이 당시 황제였던 평제의 외가 위씨(衛氏) 세력을 수도 장안으로 불러들이려던 계획이 발각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왕공 또한 여기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 출전


  • 반고, 《한서
  • * 권19하 백관공경표 下
  • * 권88 유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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